고용현장에서 장애인 직업개발의 촉진에 관한 고찰

실제 고용의 현장에서 장애인은 일에서 그의 능력이나 기술을 성숙하고 생산적인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소외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산업사회에서 일의 대부분이 너무 단편적이고 전문화되어 있으므로 장애인은 고용현장에서 개발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장애인이 직업능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동기유발을 고취시켜서 고용현장에 유입되도록 해야 합니다. 동기부여를 결정해 주는 인지적인 요인과 노력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결관계에 초점을 두는 내재적 동기부여 중심의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기대이론은 개인의 동기부여 정도는 노력을 기울여서 얻게 되는 결과가 얼마나 그에게 매력적인가 하는 정도와 노력을 기울여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하는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기대이론은 어떤 한 개인의 동기부여 정도는 최종보상에대한 개인이 느끼는 매력정도와 그것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성과수준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매력정도, 성과수준에 따라서 어떠한 최종 보상이 얼마나 주어질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확률그리고 개인의 노력을 기울여 필요한 성과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확률 또는 믿음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둘째, 형평성이론은 공정성이론이라고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은 자기가 일에다 투자하는 투입과 그로부터 얻어내는 보상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자신의 투입 대 보상의 비율이 타인의 비율과 똑같다면 형평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만족스러워하고 반면에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되면 그 사람은 불쾌감과 긴장을 느끼게 되어어떤식으로든지 형평성을 회복하려는 쪽으로 노력하게 됩니다.  셋째, 과거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주어졌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동기부여와 성과가 결정되며 또한 동시에 직무만족의 정도가 좌우하게 된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이는 성과가 만족의 결과는 결코 아니며 그 자체로 나타나는 서로 연결되는 관계이다. 직무만족은 받은 보상에 대한 사람의 느낌을

철학에서 정치, 국가의 관계에 관한 고찰

 

정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에게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가 아니므로 자연히 국가와 같은 집단을 형성하도록 되어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내버려 두면 결코 연대하지 않는 이기적인 생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국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으로 살아간다면 이보다 행복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특별한 감정을 갖지도 않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 외에도 많다는 것은 자기자신도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그 밖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 바로 정치입니다. 나 외의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일정한 룰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덧붙이자면 그 룰에는 강제력을 부여하는 권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변 도처에 권력이 들어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고 그것도 정치입니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권력에 순종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력에 순종한다고해도 맹종한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며 여러 가지 대립이나 모순이 있음을 인정한 후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우리들을 대립시키면서 한데 묶어주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삶의 기술로서의 정치가 막을 내리는 일은 없습니다. 정치의 종언이라는 것은 인간성의 종언이고, 자유의 종언이며 역사의 종언인 셈입니다.


만약!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위에서 무엇을 명령해도 거절할 수 없게 됨을 뜻합니다.

이는 국수주의자나 선동가들에게 맡기려는 태도입니다. 결과가 어찌되던 불만을 토로할 권리는 당신에게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최악의 상태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고, 몰랐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정치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일부 버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의무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종속되는 룰을 강요하는 힘이며 문제는 이 룰에 보편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꼭 따라야만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룰은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그러한 도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문을 품지 않으며 따르지도 않는다면 행복한 인생을 약속해 줄 만한 보편적인 선 따윈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룰이 없다면 우리들의 이해 대립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라는 것은 집단적 수준에서의 갈등을 수반한 이기주의 표현입니다.



중요한것은,

모두 함께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를 연대라고 말합니다.

연대한다라는 표현은 타인에 대하여 관용을 베푼다는 것과는 사뭇 다른 표현이고 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대를 한다는 것은 타인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에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구급 의료시설이 필요다하고 해서 구급 병원시설을 위한 서명을 요청을 받았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한 병원이 생긴다면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기도 하겠다는 서명에 동의를 하는 것은 관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연대입니다.


관용이라는 것은 무릇 이해를 초월한 태도에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담보도 없지만,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태도가 바로 관용입니다. 연대가 복수의 인간이 자신들을 지키는 수단이라고 보면 관용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입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관용이 바람직하나 정치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연대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연대가 훨씬 현실적으로 효과적이라는 평입니다.


종래의 논리학이나 도덕론은 관용의 목소리를 높이고 연대라는 말은 거론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서 이상론에 빠지려는 태도는 아닐까요? 역으로 정치학의 의논은 현식적인 측면만을 다루어 도덕적인 양심 등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가 지나친 겅십니다.


도덕과 정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며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어느 것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될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떠한 도덕이나 정의는 보편적으로 옳아야 한다든가,

자유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의가 실현되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일까요?

중요하다고 말하는 바가 실현이라면 이야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러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입니다. 적어도 실현해 나가려고 하는 노력이 정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정치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찬미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정치라는 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있을지도 모르나, 그들의 능력에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즉, 중요한 것은 평소에 경계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가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우리들에게 정치가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겠으나 이는 동시에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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